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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석
    읽기 2017. 12. 14. 11:03

    Susan Sontag, Against Interpretation, 해석에 반대한다, 이민아 옮김, 도서출판 이후, 2007[2002]


    <영웅으로서의 인류학자> 
    우리시대의 진지한 사유 대부분은 실향 失鄕의 정서에 맞서 싸우고 있다. 비인간적인 속도로 변해가는 역사가 인류의 경험에 초래한 이 의지할 데 없다는 느낌 때문에 감수성에 예민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모두 일종의 구토감에 관해, 지적 현기증에 관해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이 정신적 구토감을 치유할 유일한 방도는 적어도 처음에는 이를 더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사유는 헤겔주의를 응용하기로 맹세했다. 다시 말해, 타자 안에서 자기를 구하는 것이다. 유럽은 이국적인 것에서 자기를 구한다-아시아에서, 중동에서, 문자 사용 이전의 종족 가운데에서, 신화 속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혼곤해진 이성은 성적 환희나 약물이 주는 비인간적 에너지에서 자기를 구한다. 의식은 무의식에서 그 의미를 구한다. 인문학적 문제들은 과학의 '가치 중립성'과 '수치화'에서 잊혀졌던 자기 존재를 구한다. '타자'는 '자기'의 가혹한 과정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자기'는 모든 낯선 경험 영역을 식민지로 삼는데 분망하다. 현대의 감수성은 겉보기에는 양립하지 않는 듯하나 실제로는 연관된 두 개의 충동, 말하자면 이국적인 것, 낯선 것, 타자에 항복하려는 욕구와 주로 과학을 통해서 이국적인 것을 길들이려는 욕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110-111)


    이창신, 미국 여성의 역사, 또 하나의 역사, 당대, 2017


    무엇보다도 이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원주민의 습격이었다. 여성들은 이미 소설이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서 원주민들에게 붙잡혀 간 백인여성들에 대한 강간이나 납치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접했기 때문에 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한 역사가의 실제적인 통계수치에 따르면, 1841년부터 1850년까지 10년 동안 서부로 이주한 250만 명 중 362명만이 원주민의 공격에 의해 죽었음에도 상상력에 의해서 이 숫자는 훨씬 더 과장되었다고 쓰고 있다. 어떤 여성들은 원주민으로 가장한 백인들에 의해 납치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1849년에 이주하던 한 부부는 병사 4명에게 강탈을 당하고, 부인은 강단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백인여성들이 납치된 경우 많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기는데 그들은 창녀촌에 팔려가거나 아니면 노예로 팔려가든지 아니면 강제로 결혼해야 했다. (103)



    낯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배타성이 생성되는 바탕에는 그 타자에 대한 불확실함과 모호함이 자리한다. 그러한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미지의 영역에서 끌어내어 나의 익숙한 분류체계에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 손탁의 말대로라면, 나의 인지 체계에 의한 타자 길들이기인 셈인데, 문제는 그러한 노력이 타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에 도달하기보다는  자기의 확고한 세계관만을 강화하기 쉽다는 점이다. 타자는 여전히 나의 편견과 왜곡을 통해 불완전한 존재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타자의 목소리와 몸짓에 주의를 기울이고, 지속적인 소통의 과정을 통해서 타자의 나의 이해와 나의 타자 이해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것이다.  여기서 고려할 점은 사람과 세상의 일을 전하는 데 적임자로 자처하는 매체들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매체를 통한 타자와 사회에 대한 정보에 매달리게 되는 상황은 타자 이해와 타자를 통한 자기 이해 모두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해석은 이해의 종착점이 아니라, 타자와 사물에 대한 인식의 거리 좁히기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타자와 내가 구성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보고 듣고 겪는 경험의 직접성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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